친환경 정책 폐기 움직임
월가선 용어 바꾸기 추진
블랙록 "ESG 이젠 안써"
월가선 용어 바꾸기 추진
블랙록 "ESG 이젠 안써"
친환경 투자를 일컫는 용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월가에서 사라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친환경 정책을 버리고 석유 등 화석 연료 부흥을 추진하자 월가가 친환경 관련 용어 폐기부터 추진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월가 친환경 부문 투자 매니저들은 이달 초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친환경 투자의 브랜딩을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용어 변경을 통해 친환경 분위기를 최대한 제거하자는 취지다.
미국 친환경 투자 전문회사인 갤버나이즈 클라이밋 솔루션의 조지프 섬버그 매니징 파트너는 "우리는 기후변화, 에너지 전환 등 지금 쓰는 용어를 바꿔야 한다"면서 "미국 동부 엘리트들이 미국 전역의 개인 부동산에 탄소포집기를, 산업시설에 생태 화장실을 설치하라고 강요하듯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트럼프 당선인의 반친환경 정책 때문이다. 그는 기후변화를 '사기'와 '거짓'이라고 정의하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할 뜻을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은 에너지부 장관에 석유 기업 리버티에너지의 크리스 라이트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하는 등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펼칠 계획이다. 이에 월가 친환경 투자 업계는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청정에너지 전환과 관련해 500억달러 규모 투자를 이끈 임팩스자산운용의 이언 심 CEO는 "ESG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제 불가피하게 자신의 이력을 공개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친환경 투자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투자자들이 풍력, 태양광 등 ESG와 밀접한 종목의 주식을 팔아 치웠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기준 S&P 글로벌 청정에너지지수는 대선 날인 5일 대비 10% 급락했다. 일각에서는 ESG 전문가들에게 새로운 정치 환경을 맞아 변호사를 가까이 둘 것을 조언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파이낸셜그룹은 "반ESG 관련 법을 강화함에 따라 리스크가 커졌다"고 경고했다.
이미 ESG 용어를 퇴출한 곳도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해 "ESG가 정치화됐고 사람들마다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졌다"면서 ESG 용어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한때 ESG를 '지각변동'이라고 표현하며 ESG 관련 투자에 앞장섰던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ESG라는 용어의 정치화는 미국에서 친환경 정책을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립하면서 시작됐다. 올해 공화당 색이 짙은 미국 30여 개 주는 금융사가 친환경을 투자 기준에서 우선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반ESG 법을 발의했다. 텍사스주는 올해 봄 블랙록에 투자했던 자금 85억달러(약 11조원)를 빼냈다. 블랙록이 석유에너지 기업 투자를 보이콧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뉴욕 소재 마케팅 전문 컨설팅 회사인 매슬랜스키 플러스 파트너스는 "친환경 분야 사람들이 ESG 용어를 사용하면 인구의 절반을 소외시키는 것"이라며 용어 변경을 촉구했다.
한편 월가에서는 친환경 투자 부문에서 용어가 바뀌고 일부 사업이 축소될 수 있더라도 관련 투자는 어느 정도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친환경 전환 추세에서 미국만 빠지면 기술 개발이나 일자리 등에서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 윤원섭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