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당 수백~수천만원 비용에도
관절염·암환자들 일본서 치료
국내치료 허용 법안 내년 시행
희귀·난치질환 환자만 가능
추가 규제완화 목소리 커져
한국 병원에서 본인의 세포를 채취해 일본으로 보내고 약 2주 후에 배양된 면역세포 주사를 일본에서 맞는 식이다. 이번이 여섯 번째다. 김씨는 "주사 맞고 진료를 보는 데 1~2시간이면 되기 때문에 간 김에 앞뒤로 일정을 붙여 관광이나 쇼핑을 하고 온다"면서 "언제 암이 재발할지 몰라 늘 불안한데, 면역력이 잘 유지되고 있어 내년 1월에 한 번 더 다녀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금지된 면역세포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 원정'을 떠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최소 수백만 원이 들지만 한국에서는 치료받을 길이 없어 일본으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일본·미국·유럽 등 전 세계가 줄기세포를 활용한 재생의료산업을 키우고 있는데, 한국만 규제에 발이 묶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의료계에 따르면 '줄기세포 원정 치료'를 떠나는 한국인은 한 해 3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1회 비용은 600만~800만원 선으로, 단순 계산해봐도 연간 2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일본에서 지출되고 있다. 전 세계 환자들이 한국 의료를 찾는 시대에 정작 우리 국민들은 원정 치료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학계에서는 2005년 이른바 '황우석 사태' 이후 20년 가까이 줄기세포 치료와 연구가 엄격하게 제한된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에서도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2020년부터 첨단재생바이오법으로 규제 완화의 길을 텄고, 지난 2월 관련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보건복지부가 12월 9일까지 세부 시행령을 입법 예고한 상태로 내년 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임상연구 대상을 모든 질환으로 확대하고, 검증된 재생의료 기술에 한해 심의를 거쳐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환자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양은영 차바이오그룹 사업총괄 부사장은 "정부가 법을 개정하면서 많이 나아졌지만 일본 수준까지 풀려면 갈 길이 멀다"면서 "무엇보다 치료 대상이 중대·희귀·난치 질환자로 한정돼 있어 정작 지금 일본으로 가는 환자들의 국내 치료 길은 여전히 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차바이오그룹이 운영하는 '토탈 셀 클리닉 도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이 병원을 찾은 한국 환자 중 30~40%가 암 경험자들이다. 만성통증으로 고통받는 골관절염 환자들이 약 30%, 미용이나 항노화 등이 목적인 건강한 고객도 30%를 차지한다. 이들은 모두 현행법상 중증이나 난치병 환자가 아니어서 법이 개정돼도 한국에서 치료받을 수 없다.
일본에서 줄기세포 치료는 규제가 거의 없는 '시술' 수준의 의료 행위다. 일본은 2015년부터 의료기관에서 제한 없이 세포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했다.
2012년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유도 만능 줄기세포(iPSC)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자 '줄기세포'를 미래 의학의 중심축으로 천명하며 규제를 확 풀었다.
환자당 치료비용은 수백만 원에서 1억원대까지 다양하다. 전 세계에서 매년 10만명 이상이 줄기세포 치료차 일본을 찾는다. 관련 산업까지 합치면 시장 규모만 수조 원대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도 3~4개사가 직접 도쿄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 병원과 제휴한 알선업체들도 성업 중이다.
양 부사장은 "우리는 세포 치료제를 '의약품'으로 접근한다면 일본은 의사들의 자유로운 의료 행위로 본다"면서 "일본은 의약품 제조 품질관리 기준(GMP)도 우리보다 훨씬 완화해줘서 제조 단가가 한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환자들이 위험에 노출됐을 때 사실상 제어할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 한국에서 검증받은 병원들이 일본 클리닉을 운영하지만 일부 업체는 불법과 합법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 바이오업체 관계자는 "어떤 회사는 그럴듯한 말로 환자들을 모집해 가서 사실상 불법인 시술을 하는데, 언제 의료사고가 날지 몰라 아슬아슬하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일본에서 하는 시술은 대부분 자신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맞는 방식이어서 한국에서 금지할 이유가 없다"면서 "차라리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정부가 관리감독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심희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