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례적 불만 제기했는데
정책대출 풀고 대출규제 늦추면서
집값 잡을 책임 다하지 못한
과오 없었나 성찰부터 해야
한국은행의 22일 기준금리 동결에 정부가 뿔났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금리 결정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고유 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정부가 금통위 결정에 이견을 밝힌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금리 인하를 원했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를 살펴보면, 정부가 뿔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한은이 금리를 낮추지 못한 건 집값 상승을 우려해서인데, 사실 집값을 잡을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정부는 부동산 관련 정책 대출을 늘리고, 대출 규제 시행을 늦추는 식으로 오히려 집값 안정에 역행했다. 은행 팔을 비틀어 대출 금리를 낮추라고 압박도 했다. 그래 놓고는 인제 와서 한은의 금리 동결에 오히려 타박질이다. 정부는 자기 일부터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한국은 선진국 중에서 가계빚이 유독 많은 나라다. 국제통화기금 (IMF)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2022년 기준)’이 지도 위에 표시돼 있다. 한국은 그 비율이 105%에 이른다. 반면 미국은 74%, 일본은 68%다. 지난 6월에는 일부 언론이 국제금융협회 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1위라고 보도하자 정부에서 “1위가 아닌 4위”라는 해명 자료를 내는 해프닝도 있었다. 가계부채 비율 4위도 순위가 엄청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당연히 경각심을 갖고 기계빚을 줄이는 노력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유도한다면서 정책 대출을 풀었다. 2%대 금리인 디딤돌 대출은 올해 상반기에만 15조원이 나갔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의 거의 2배라고 한다. 1%대 금리까지 제공하는 신생아특례대출은 소득 요건을 계속 완화했다. 대출받으라고 권한 셈이다. 게다가 정부는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시행을 갑자기 7월에서 9월로 두 달 연기했다. 이로 인해 규제 시행 전에 대출받자는 수요가 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오른다‘는 불안 심리마저 퍼지면서 빚을 내 집을 사자는 수요가 더욱 늘어났다. 2분기 주택담보대출이 16조원이나 증가한 것이다. 가계빚(가계신용 기준)이 역대 최대인 1896조 2000억원을 기록한 것도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탓이다. 금융안정이 사명인 한국은행으로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금리 동결을 결정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도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한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정부 동안의 집값 상승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집값 상승은 누구보다도 윤 정부가 더욱더 걱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정부보다는 한은의 심려가 더 큰 거 같다.
김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