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이른바 칩워’(Chip War)가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도 관련 논의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여야 민생 법안과 공통 공약을 함께 처리하는 민생·공통공약 추진 협의체(민생협의체)를 출범했다. 이번 민생 협의체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난 1차 여야 대표회담에서 합의한 데 따른 것으로 여야는 각각 자체적으로 법안을 추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협의체에서는 ▲반도체 산업과 인공지능(AI) 산업,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을 위한 지원방안 ▲자본시장법과 같은 자산시장을 밸류업하는 법안 ▲저출생 대응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을 주요 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그중 반도체 산업 지원 강화를 위한 ‘반도체 특별법’을 놓고선 여야 모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다만 직접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 지원 방법을 놓고서는 각각 다른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실제 법안 추진에는 속도가 붙을지 미지수란 의견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보조금 정책 지원이 논의되는 것을 놓고 일단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최근 주요 선진국들이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경쟁하듯 지급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지원금 지급 이슈가 공식적으로 첫 발을 떼면서 변화가 예고됐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협의체까지 구성되면서 관련 법안 논의가 구체적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아직은 단순 협의체 구성일 뿐,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반도체 산업 유치를 위해 대대적인 보조금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68조원, 중국은 101조원, EU는 62조원, 일본은 10~20조원의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
정부는 내년까지 반도체 업계에 8조8000억원 규모의 지원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저리 대출·펀드 등 금융 지원과 연구개발(R&D) 지원 등이 주된 내용이다.
전체 지원의 절반인 금융 지원은 사실상 대출이 전부인 만큼 업계에선 아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기업이 알아서 쓸 수 있도록 현금으로 주는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선진국과 달리 세액공제를 통한 간접지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세제 혜택의 경우 영업이익 계산 이후 공제를 받는 간접 지원인 만큼 실제로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며 “직접 지원이면 좋겠지만 우리나라 정서상 허들을 넘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K-반도체가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제17회 반도체의 날 기념식에서 “지금 반도체 패권 경쟁은 단순한 경제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의 사활을 건 총성 없는 전쟁”이라며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과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전력·용수 등 인프라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투자 시기가 늦어지면 원가 경쟁력이 떨어져 결국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다”며 “적기 투자가 결정적 요인인 만큼 반도체 기업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